역시 오늘도 이어지는 구라.



[펌]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국군을 비교하면

위 구라가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오류들.

초대총참모장
이름 : 안길
항일유격대 지휘관으로 일본놈들과의 유격활동에서 김일성 못지않은
공적을 세웠음.
일본놈들 그의 목에 현상금5000원 걸었음. (그때돈 5000이면 지금 빈라덴
에게 걸려있는 5000천만 달러와 같음)


1. 북한의 초대 총참모장(단 육해공군의 참모부가 아닌 1946년 8월 15일에 창설한 "보안간부 훈련대대부"의 총참모장이다. 1947년 12월 사망시까지 재임)인 안길은 일제시대 대부분의 기간동안 유격대 지휘관이 아니라 정치위원이었다.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제3방면군 14단 정치위원, 소련군 88특별 독립여단에서는 2대대 정치부대대장으로 복무했다.
또한 모든 간부가 사상하는 비상시라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정치위원은 전투지휘가 임무가 아니다. 따라서 "공적을 세워 명성을 날릴"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없다.

2. 보천보 습격 이전, 동북항일연군에서 1로군 사령관과 1로군 정치위원에게 현상금이 붙었던 사례를 보면 정치위원인 안길에게도 현상금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그 액수가 5천원? 일단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게 빈라덴의 5천만 달러와 맞먹는 액수다? 그럼 김구 선생에게 걸린 현상금 60만원60억 달러인가? 뻥도 정도껏 쳐야 통한다,


민족보위상(지금의 이북의인민부력부장 직책)
이름 : 최용건

항일연군 지휘관으로서 항일연군의 고위직에서 활동했음
동북항일연군 1군 군장(군단장급)으로서 일본놈들 현상금 1만엔 걸
었던 유명한 장군.
조선인으로는 그때 현상금이1만원인 인물은 동북항일연군 2군 정치위원겸
6사 사장(사단장급)이던 김일성 전주석 둘 뿐이였음


1. 1936년 창설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1군 군장은 중국인인 양정우다. 양정우는 제1로군 사령관이면서 1군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1군 예하의 3개 사 사장 역시 전원 중국인이며, 2로군 소속의 4/5/6사 중 5사장도 중국인이다. 4사장 김주인과 6사장 김일성만이 한국인이다. 김일성이 데리고 있던 정치위원 2명(조아범, 위민생) 역시 중국인이다. 최용건은 주로 전투가 아닌 정치임무를 맡았고, 88여단에서도 정치지도원이었다.

2. 1940년 4월의 보고를 보면 양정우는 생사불명(실제는 40년 2월 23일 전사)으로 되어 있으나 그 대신 전 2사장 조아범(중국인, 40년 4월 8일 전사)이 1방면군(병력 감소로 제1군을 재편성한 조직) 사령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때 김일성은 2방면군 사령이다. 그 후에 정식으로 1로군 사령관이 된 위승민은 41년 3월 8일에 병사하였으며, 이로써 동북항일연군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이후 동북항일연군 잔여병력은 소련으로 도피, 88여단으로 재편된다.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일본군 토벌대의 활동도 1941년 3월 12일자로 종료되었으며, 여기 어디에도 최용건이 1군장 또는 1방면군 사령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기록은 없다.


기타 조선인민군 각 부대 지휘관들은 항일유격대지휘관들이 주축이 되였고
기타 중국팔로군과 소련 붉운군 에서 활동하던 군인출신들이였음


북한 공군 건설에 참여한 이활을 비롯한 일본군/만주군 출신자들은 공기인 모양이다. 어쩌면 "주축"이라는 단어가 그에 대한 면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국군

초대 참모총장
이름: 이응준

일본육군 대좌 출신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직업군인으로서 주로 동남아
전선에서 활동했음 일본에 세운 공로로 훈장도 많이 받았음


북한군은 1946년 창설한 보안훈련대대를 기준으로 하면서 한국군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로 잡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사실왜곡이다. 1946년 1월 14일에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 후일 통위부로 개칭된 기구의 실질적인 첫 총참모장(*)은 이형근이다. 이형근 역시 일본군 출신이라는 점은 같으나, 이후 중국군(국부군이나 팔로군이 아닌 군벌군) 출신의 송호성으로 교체되었고 정부 수립 이후 취임한 이응준은 3대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가 직제개편으로 48년 12월 15일자로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또한 남한의 첫 국방장관은 독립군을 이끈 이범석이었다.

* 명목상 국방경비대의 첫 사령관은 원용덕이었으나 그의 지위는 명목상의 것이었다. 군의관 출신인 원용덕은 실질적으로 군대를 거느릴 능력이 없었다.



6.25 때 인민군 장군들 전투 지휘하다 전사한 수자가 공식적인 것만 17명

한국군 장군들 전투지휘하다 전사한 수자가 아쉽게도 0


앞에 나가 죽는 장군이 병X이다. 장군의 책임은 군대를 지휘하는 데 있지 선두에서 돌격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휘공백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책임이 선두 돌격에 있다면, 왜 동북항일연군과 지리산 빨치산들은 <간부보존대책>을 내세워 간부들에게 최일선에 나서지 말라고 했는가? 계속 살아남아 투쟁을 이끄는 것이 간부의 책임이기 때문 아닌가? 그럼 왜 한국군 장군들 보고는 앞에 나가 죽으라고 강요하는가?

북한군 장군이 실제 17명이나 전사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북한군 장군 전사자가 많다면 그것은 충분한 포병 화력도 제공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공엄호가 없는 상태로 사령부가 공습당하면 장군이 전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는 한국군과 유엔군에는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다. 임진왜란에서 천자총통에 맞아 죽은 조선군 장수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북한군 장군 전사자가 많다는 것을 진두지휘, 솔선수범의 증거로 제시하고 싶으면 어느 전투에서 누가 뭐하다 죽었는지 입증하면 된다.

한국군 장군 전사자가 전혀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개같은 쓰레기 자식이지만 채병덕 장군은 분명히 하동전투에서 북한군의 기관총에 맞아 전사했기 때문이다. 혹시 채병덕은 한국군 "지휘"가 아니라 미군 "안내"하다 죽었으니까 논외인가?

by 나야스 | 2009/10/30 13:25 | 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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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09/10/30 13:40
채병덕은 그래도 전사라고 되어있잖아요?ㅋㅋㅋ 한명도 없다는 말은 또 구라이고.. 백선엽 장군도 진두지휘로 유명했으며 김석원 장군만해도 무식할정도로 진두지휘에 대해서 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걸 모르는듯..ㅋ

그리고 사단장이 진두지휘하다 죽을경우 그에 대한 사단전체 자칫 마비될수 있다는것도 모르는지..ㅋㅋㅋ 결국 그런식으로 인민군 사단들이 작살났다는걸 우회적 표현이 아님메? 어지간히 밀리터리 지식도 없는 망론망필께서.. 또 쇼를 하시는군요.. 전부터 아프간 파병에서도 발광발광해대던데.. 논박하고 나면 또 비로그인자들이 발광할거고..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4:46
왜 그 잘난 김일성 주석께서는 남정군의 선두에 서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09/10/30 14:56
우리 수령님은 솔방울으로 슈류탄 만드시느라.. 바쁘시다능!!!
ㅋㅋㅋㅋㅋ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7:18
그런 거군요. 그런데 왜 비행기는 못 만들까요.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10/30 13:42
장군들이 관우, 장비처럼 나가서 싸우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4:46
그런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0/30 13:46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원래 정론찍필은 일본 제국주의적 마인드의 숭배자이니깐요 'ㅅ' 그까짓 반자이어택 숭배쯤이야....ㄷㄷ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4:48
이승만이 총 들고 싸우다 경무대에서 죽었으면 뭐라고 비웃었을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9/10/30 13:51
역밸 여러분. 책사풍후가 쳐들어 왔을때 다들 성문 꼭꼭 걸어잠그고 청야전술 펼치신 거 기억 안하세요? 사론곡필도 그렇게 하면 알아서 갈겁니다.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4:48
책사풍후는 정론직필과 전혀 다른 부류입니다.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09/10/30 14:57
이 양반은 논박당해도.. 망론을 그대로 뉴스비평과 역사밸리에 올리시던데요?ㅋ
Commented by 我幸行 at 2009/10/30 15:39
질적으로 좀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햏도 그렇고요.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7:19
확실히 책사풍후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Commented by 대한민국 친위대 at 2009/10/30 15:07
국군 장성중에 채병덕 장군이 솔선수범으로 지휘(........)하다 전사한걸 까먹었군요. 근데 채병덕 장군은........ 끙.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17:19
용감히 전사했다고 인정해주는 것 자체가 진짜 화가 나는 인간입니다.
Commented at 2009/10/30 18: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21:29
그래도 자기가 옳다고 할 겁니다.
Commented by 셰이크 at 2009/10/30 19:46
장군이 죽으면 부대는 누가 지휘를...
백선엽장군도 할 수 없어서 권총들고 최전방에서 돌격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건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고...
왜 김일성장군은 진두지휘를 아니하신 것인지는 과연 생각해볼 일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0 21:30
전쟁중 가장 남쪽으로 내려온 게 수안보 까지였습니다.

왜 부산커녕 다부동까지도 안 갔을까요?
Commented by 청풍 at 2009/10/31 04:21
어서 가카께서 국군을 진두지휘하셔서 평양으로 돌격하셔야 합니다. ㅋㅋ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0/31 10:39
총도 쥘 줄 모르는 가카라면 군대 사기만 떨어질 겁니다.
Commented by d/s at 2009/11/03 21:13
5천원이 5천만달러면, 1원이 만달러. 원산총파업 당시 조선인 하역인부의 공식적인 임금이 하루에 1원 50전이니까 1만 5천달러. 일년에 200일정도 일한다고 보면 3백만달러. 와아! 대일본제국 만세! 천황폐하 만세! 아무래도 사론곡필은 진성 일빠가 분명합니다.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1/03 23:52
그렇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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